두 번째 인터뷰: 지금보다 나은 환경에서의 삶을 생각한다면 어떤 것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은행을 나올 무렵을 떠올려보며 당시의 저는 삼십 대 중반의 자녀 한 명을 둔 세 가족의 가장이었습니다.
직급은 대리였고 평범한 대한민국의 직장인이었어요. 결혼이 빠른 편은 아니었지만 첫아이가 생각보다 빨리 우리 부부에게 찾아온 덕에 어떻게 하면 우리가 부족함 없이 잘 살 수 있을까에 대한 관심이 많았습니다. 아, 당시 저의 아내도 은행원이었고 누구나처럼 자산을 늘리는 일에 관심이 많았아요. 저의 아내는 알뜰하게 저축해서 돈을 모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고 저도 그 의견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투자에 대한 필요성을 조금씩 느끼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 출발점으로 매월 급여의 일정액은 변액보험 같은 상품에 투자하기 시작했어요. 아내와는 같은 지점에서 일하던 분께서 소개를 시켜주셔서 만나게 되었는데 꽤 빨리 결혼했습니다. 처음 만나고 103일 만에요. 언젠가 사랑과 결혼에 대한 얘기를 하게 된다면 이 스토리는 그때 들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마도 이 인터뷰의 가장 마지막에는 얘기를 하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모든 일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나와 타인에 대한 사랑일 테니 빠질 수 없는 얘기가 될 것 같네요.
다시 돌아와 말씀드리자면, 당시 업무적으로는 기업 창구 소속이었고 근 8년간 기업 관련 모든 업무를 담당했었습니다. 거래처 직원들의 급여이체부터 시작해서 개인사업자분들의 운전자금 대출 그리고 수출입업체 들의 선물환 거래까지 다양한 일들을 했어요. 참 많은 분들을 만났습니다. 그때 알게 된 인연으로 지금까지 만남을 이어오고 있는 거래처 대표님들이 꽤 계세요. 너무 감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로서는 해야 하는 일이기에 진행했을 뿐인데, 생업을 걸고 사업을 하시는 분들께는 소액의 대출이라 하더라도 크게 다가갈 수밖에 없었던 거죠. 그분들의 마음을 헤아리게 되었을 때 저는 제 일을 좀 달리 보기 시작했습니다. 누군가의 꿈을 이루거나 한 가정을 지키거나 기업에 몸담고 있는 많은 분들의 삶을 지키는 데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는 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던 거죠. 그 생각이 들었던 것이 2015년 말 즈음이었어요. 참 그간 생각 없이 가방만 흔들며 출퇴근하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 생각이 없었어요. 거래처에 요구했던 서류를 가져오면 그냥 전 입력만 했어요. 결과는 어차피 전산 시스템에서 자동적으로 산출해 주니 깊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일의 의미를 모르고 산 거죠. 무려 10년 가까운 시간 동안에요.
그때부터 고민이 시작되었습니다.
나에게 일이란 무엇이고 어떤 방식으로 나의 일을 대해야 하는 것인지, 이 일을 통해 나는 무엇을 얻게 되고 지금보다 나의 삶이 더 무르익었을 때 나는 그간의 일들을 통해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이 무렵부터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돌이켜보니 몇몇 의미 있던 모임의 자리를 제외하고는 의례적으로 빈번하게 이뤄지는 회식자리가 지나치게 많았습니다. 돈과 시간과 에너지를 나의 뜻이 아닌 팀장 혹은 거래처의 뜻에 따라 아낌없이 지출하고 있었어요. 지금은 어떤 분위기 일지는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지극히 보수적이던 직장에서 상사의 뜻에 반하는 표현 자체가 금기시되었기에 저는 저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지 않았습니다. 상사는 나의 1차 고과권자였고 인사평가를 하시는 분이었으니 어떤 상황에서든 상명하복이 미덕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오히려 당시 개인의 의견을 논리적으로 피력하는 분들을 '별종'처럼 평가하기도 하는 조직의 분위기는 규율과 원칙 그리고 내부통제를 중시하던 업종의 성격과 잘 맞닿아 있었습니다. 어느 순간 벗어나고 싶었어요. 서로의 눈치를 보고 나의 것을 조금이라도 더 취하기 위한 자리가, 그런 시간이 비생산적이며 소모적이라 느꼈습니다. 우선 이런 환경을 벗어나기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해 봤어요. 옵션이 많지는 않았지만 큰 틀은 잡히게 되었죠.
주기적인 인사이동이 있는 조직이니, 다음 이동을 위해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업무적 성과를 통해 나를 드러내고 다른 업무적 기회에의 희망을 적극적으로 상사에게 어필해 본다.
한 기업의 자금을 담당하는 분들과 운영을 하는 오너를 만나는 일이 쉽지는 않지만 이 일을 하면서는 기회가 매우 열려있다. 이분들과의 대화와 만남을 통해 좋은 점들을 배우고 지속적으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개인적인 성장에 간접적인 도움을 받는다.
이렇게 정리하고 보니 공통점 하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지금 나에게 주어진 조건을 충분히 활용하자
오늘 당장, 이곳을 박차고 나가는 것은 불가능했어요. 정도와 수준에 대한 기준이 마련되어 있지 않았지만 힘을 들이지 않고 제가 바로 시작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았습니다.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어도 기업 고객분들이 계속 방문하는 상황은 많은 이들과 업무적 환경과 바람직한 방향으로의 흐름에 대한 얘기를 어렵지 않게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 이 과정에서 은행의 다양한 상품에 대해 안내 및 판매하는 과정에서 세일즈 역량은 조금씩 나아졌습니다. 기존의 관계에 의존했던 판매 방식에서 벗어나 고객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집중하며 그분들의 이야기를 경청했어요.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은행원'이 되었고 소개를 통해 다양한 고객분들께서 방문하시기도 했어요. 보람이 있었습니다. 누군가의 삶의 아주 작은 한 부분일 테지만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기뻤어요. 그리고 매일 더 나은 직장인이 되기 위한 배움의 기회도 많았습니다. 당시 매년 100시간의 교육을 이수하고 시험을 봐서 일정 기준 이상을 통과해야 하는 인사교육 관련 규정이 있었는데, 궁금하고 알고 싶던 영역에서의 공부를 돈을 들이지 않고 할 수 있었어요. 모든 직원에게 동일하게 적용되었던 것이었기에 어느 정도 업무가 마무리되면 같이 스터디를 하는 환경도 참 감사했습니다. 따지고 보면 은행의 환경이 바뀐 것은 아니었는데, 제 생각의 변화 하나가 삶의 변곡점이 되어 커리어의 조류를 바꿔놓기 시작했습니다.
실천과 사유의 시간이 늘어나면서 고민은 더욱 깊어졌습니다. 매일 같이 스스로를 채워도 부족한 기분이 들었어요. 제가 보고 있는 세상이 매우 제한적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개인적인 노력과는 상관없이 통제할 수 없는 지점의 상황에 따라 진행해야 할 업무는 계속해서 늘어갔어요. 저의 시간을 온전히 통제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지금이야 그렇지 않은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지만 당시에 은행은 밤 10시, 11시까지 근무하는 것이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여졌어요. 돌이켜보면 이런 패턴이 생산적이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늘 인력은 부족하고 업무는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으니 있는 사람들의 절대적 근무시간이 늘어남은 피할 수 없었던 거죠. 그래도 삼십 대 초중반의 저는 지금보다 체력도 좋았고 주 5일 술자리를 가져도 다음 날 지각없이 업무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게요, 벌써 십 년 전입니다.
결정적으로 이런 환경을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한 몇몇 일들이 있었고 조직이 결코 책임져 주지 않을 개인의 인생, 즉 저 자신의 인생을 오롯이 제가 책임지기로 결정했습니다. 나만의 시간, 건강, 가족, 인생, 꿈 등 이 모든 것의 방향을 제 스스로 선택하고자 마음을 먹었어요. 앞서 말씀드렸듯, 어떤 환경에 있던 내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을 '기회'라는 시각으로 접근한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한편으론 너무 무서웠어요. 준비도 없는 퇴사를 감행하는 것은 책임져야 할 가족이 있는 상황에서 당연히 무모한 일일 테니까요. 그런데 이런 준비가, 이런 결정을 내릴 완벽한 때라는 것이 과연 있는가라는 질문을 한다면 0.1초의 고민 없이 '그렇지 않습니다'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아마 이때를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했다면 저는 지금쯤 은행에서 차장 직급으로, 대리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업무를 하며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을 거라는 그림이 그려집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떤 삶의 태도를 유지해야 하는지 꽤 선명하다고 판단했어요. 그리고 결정했죠.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말도 안 되는 실패를 거듭해도 저의 방식으로 해나가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7년이 흘러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고요. 그 과정을 한 문장으로 정리해 보고 싶었는데 적절한 문장이 있었네요.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
-찰리 채플린
지금 돌이켜보면 저의 오늘은 참 아름답습니다. 창으로 들어오는 따듯한 햇빛에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며 기록을 하는 저의 일요일이 이렇게 좋을 수가 없습니다. 아내가 준비해 주는 주말 브런치에 감사함을 느끼고, 건강하게 잘 자라주는 아이들은 너무나도 사랑스러워요. 이 순간의 단편은 그렇습니다.
오늘의 순간들을 만들어 준 매일, 매주, 매월, 매년의 스펙트럼을 길게 늘어놓고 하나 둘 살펴보면 어떨까요? 네, 사실 다시 돌아보고 싶지 않은 순간들도 꽤 많습니다. 비극까지는 아니었지만 너무 괴롭고 힘든 순간들 투성이었어요. 하지만 그런 모든 순간들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습니다. 사십 대 초반 빠르게 성장하는 외국계 스타트업의 경영진이 되었고 급여소득자였다면 받기 어려운 보상을 매해 누리고 있습니다. 아직은 현실화되지 않은 스톡옵션의 가치까지 더한다면 저는 인생의 다른 게임판에 들어온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매년 저의 자산과 보상은 더욱 늘어가고 있지만 또 매일의 어려움은 존재하죠. 그럴 때마 저는 7년 전 이 무렵을 떠올립니다. 내게 주어진 모든 환경과 기회를 활용해 보자고 말이죠. 여전히 저는 세일즈 분야에서 한 조직을 총괄하고 있습니다. 업무적으로 만나게 되는 분들은 거의 대부분 대표이거나 최종 의사결정 권한을 갖고 있는 지위에 있습니다. 이분들과 교류하며 업무적으로도 도움을 받지만 개인적인 성장에도 인사이트를 얻는 관계가 되려고 애씁니다. 다행스러운 점은 이전과 비교했을 때 거래처와의 술자리는 지난 1년간 단 한차례에 불과했고 그마저도 각자 비용을 계산하고 적당한 시간에 모임을 마쳤습니다. 또한 실무적인 영역에서 거리를 두고 있다 보니 주어지는 시간에 좋은 글을 찾아 읽고 업무에 적용하기 위한 고민들을 합니다. 이 과정에서 여러 팀원분들과 대화를 나누며 서로 좋은 아이디어를 공유하기도 해요. 이런 과정 모두가 내일의 제 모습을 '희극'으로 만들어 줄 것이라고 믿고 있어요. 당연히 그럴 겁니다. 그래서 오늘도 제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에 감사하고 아낌없이 활용해 보려 노력해요. 여기가 바로 출발점이 되는 겁니다.